2022-09-26
이준혁
불장난(제45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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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학상은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문학상 중 하나일 것이다. 불세출의 천재 작가인 이상의 명성을 차치하더라도, 한국에서 손꼽히는 소설가 이문열 작가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TV 출연으로 유명해진 유영하 작가의 "옥수수와 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공지역 작가의 "맨발로 글목을 돌다" 등 문학에 관심이 있다면 들어보았을 법한 작가들의 대표작 혹은 신작들이 가득하고 때로는 그런 유명한 작가가 되어가는 신인 작가들의 흥미로운 작품들도 접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매우 개인적인 이유로 고등학교 시절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처음 접하게 되어 오늘날까지 매년은 아니지만 꽤 여러차례에 걸쳐 책을 구매하고, 읽어오고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반장은 조금, 아니 많이 독특했었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는 많았지만, 그 친구는 문제집만 풀며 공부하는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으면 좋아하는 시나 소설을 읽으며 수능과는 상관없이 독서를 꾸준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반면 나는 만화책을 좋아하고 무협 소설도 즐겨 읽는 문학적 취향과 소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수능이라는 목표를 향해 옆을 보지않고 달려가던 낭만이 없는 학생이었었다.
이처럼 다른 친구의 독서 취향이 신기하기도 했었고, 그 아이가 이미 쌓아 올린 문학적 소양에 질투가 나기도 했었던 나는 그 친구가 좋아했던 몇몇 출판사 (다양한 출판사화 그들만의 철학이 있다는 것을 이때 처음 알았던 것 같다)중 하나인 문학과 사상집에 있던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처음 접하면서, 그 친구의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하며, 닮고 싶었던 마음이 생겼었다.
즉, 이상문학상 작품집은 성숙하지 못한 나의 문학적 취향
나아가서는 나의 정신을 성숙시켜서 더 어른스러운 내가 될 수 있게 도와줄 도구로서, 그래서 그 친구에게서 가끔 보이는 진중하며, 어른스러운 모습을 닮기 위한 매개체로서의 상징인 것 같다
물론, 가끔은 회사에서 읽는 사무적인 글과 문서들을 떠나 문학적 목마름에 이끌려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찾았던 경우도 있지만 그렇게 시작된 갈망도 결국은 그 친구를 기억하는 일이 되어버림은 물론이고 어느덧 나이가 들어버린 지금도 그 친구의 고등학교 시절 문학적 소양만큼 성장하지 못한 것 같은 내 자산을 채찍질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되는 듯하다.
그래서 나에게 이상문학상 작품집은 이제는 세월이 지나 행복한 추억만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고등학교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이제는 연락이 끊겨 이별 아닌 이별을 한 친우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마음이나 정신이 고플때면 알찬 영양으로 채워줄 그러한 책으로서 회상될 것이다.
2022년 제45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대상 수상직인 손보미 작가의 "불장난"은 이혼 과정을 겪는 초등학생 소녀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속마음을 일인칭 시점으로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혼 가정에서 지내게 됨으로써 겪게 되는 일들은 물론이고 초등 고학년 소녀가 겪을 수 있는 또래 친구들과의 관계, 1~2살 나이 많은 6학년 혹은 중학생에 대한 생생한 인식을 보여줌으로서 독자의 소설을 통하여 순식간에 자신들의 유년 시절로 돌아가 한 소년, 소녀로서 느꼈던 그때 그 감정들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불장난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주인공이 느끼는 일탈과 해방의 경험, 어른들이 모르는 비밀을 만들고 지켜나가는 것에 대한 감정, 불장난하면서 주인공이 경험하는 일들을 아주 세세하게 묘사하여 몰입감을 높이고 있다.
작가는 단순 일인칭 시점이 아닌 당시 상황에 대한 현재 어른으로서 느끼는 생각, 당시 소설 속 내가 느꼈던 감정에 대한 부연 설명, 당시 있었던 사건에 대한 자기 생각 등을 덧붙이고 있다.
이렇듯 손보미 작가는 시점과 시간을 복합적으로 설계함으로써, 독자들을 더욱 몰입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듯하다
초등학생으로서 경험하는 사건과 감정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어 몰입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독자가 초등학생 소녀는 아닌, 어른이 되어서 혹은 더 자라고 성숙하여 반추하고 회상하며 떠오를 수 있는 생각들과 감정들을 같이 보여줌으로써 한 걸음 물러나서 발생한 사건 그 자체보다는 독자 개개인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끔 하여 그 당시와 지금의 생각과 감정을 한 번쯤 돌아보게 하는 느낌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 혹은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일 것이다. 같은 사물 혹은 사건에 대한 느낌과 생각이 달라지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면서 동시에, 변해버린(그것이 긍정적이든 아니든) 나의 감정과 기억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며 느껴지는 감정을 바라보는 것 또한 흥미로운 일이다.
세월이 지난 후 다시 읽으면 또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올 작품이라는 점을 기억에 새기면서 다시 한번 만날날을 기대해 보고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엣친구와 불장난 처럼 오래된 학창시절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낼 기회가 생기기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