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30
신은지
여행의 이유 [절판 주문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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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야 '살인자의 기억법', '오직 두사람', '너의 목소리가 들려'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고, 알쓸신잡에서 풀어놓는 지식들과, 그의 경험에 대한 생각들을 접할 기회들이 많아서인지, 산문집, 그것도 '여행의 이유'라는 제목의 산문은 단연 주목을 끌만한 책인 것 같다. 누구나 서점에 들어서서 이 책을 발견하면 한번쯤은 책 속을 펼쳐보지 않았을까한다. 나 역시도 비슷한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이 책을 선정하게 되었다. 그는 여행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여행 중 어떤 생각들을 하는지 궁금했었다. 나 역시도 여행의 경험을 통해 값진 선물들을 받고, 여행을 통해서는 얻지 못했을 느낌과 감정들을 느끼곤 하며, 종종 일기처럼 경험에 대한 글을 끄적여 놓지만, 역시 글을 쓴다는건 쉬운일이 아닌 것 같다. 실뱅 테송은 '여행의 기쁨'에서 괴테를 인용하면서 '여행을 할 때 나는 언제나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낚아챈다. 여행은 여행자가 외부 세계에 감행하는 습격이며, 여행자는 언젠가 노획물을 잔뜩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약탈자다'라고 덧붙인다. '여행자는 어디로 여행하느냐에 따라, 자신이 그 나라와 도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또한 그 도시의 정주민들이 여행자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방식을 적극적으로 조정하고 맞춘다. 때로 우리는 노바디가 되어 현지인 사이에 숨으려 하고, 섬바디로 확연이 구별되고자 한다. 실뱅 테송의 표현대로 여행이 정말 일종의 습격이라면, 여행자들의 이런 선택은 원주민의 힘과 위계에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여행자를 반기지 않고 심지어 공격할 수도 있는 오만한 원주민들이 살고 있다면, 그리고 그 도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이라면, 여행자는 자신을 최대한 감추며 드러내지 않고자 할 것이다. 여행에서도 우리는 다양한 가면을 쓰면서 자신의 모습을 바꾼다. 그러면서 부수적으로 알게 되는 것은 고향에서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여행지에서 쓰는 가면이 조금 낯설 뿐이다.' 어린 시절 유럽배낭여행을 가면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것을 보려고 유명한 명소들, 관광지들을 골라서 방문하였다. 수많은 여행자 속에서 누가 나의 물건을 노리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복대 속에 돈을 넣어서 꽁꽁 싸매고 다니고, 소매치기를 의식하여 짐을 꾹 움켜쥐고 걸어다녔다. 누가봐도 여행자의 모습인데, 불안한 마음에 두리번 거리느라 제대로 여행을 즐기지도 못하고, 수많은 인파들 틈에 겨우 끼여 명소를 밟아봤다고 좋아했던 기억들이 있다. 최근 몇년간은 여행 방식을 완전히 바꾸었다. 여행으로 가보고 싶던 곳들에 대한 갈증이 어느정도 채워졌고, 그간의 여행 기억들을 돌이켜보니, 콜로세움, 루브르미술관, 대영박물관 등 여행 필수코스로 들어가 있는 장소들에 대한 기억들보다도, 이탈리아 소도시 이름모를 식당에서 서서 먹은 피자, 파리에서 30여분 거리에 있던 고흐의 밀밭 풍경화의 대상지, 런던에서의 어느 일요일 아침에 먹은 크림티 등이 더 강렬하다. 그래서 요즘은 한 도시, 한 장소를 직장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긴 시간을 머무르고, (그래봤자 2주를 넘지 못한다) 테마를 정해보았다. 그리고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거리 밖으로 나설 때에는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한다. 복대도 풀어버리고, 가방도 없이 홀연히 밖으로 나온다. 요즘에는 여행에 대한 정보가 넘쳐나고, 여행 어플, 구글맵 등 여행하기 너무 좋은 세상이다. 정보에도 의지하지 않고 동네부터 걸어본다. 내가 머무는 시간만큼은 여기가 우리 동네라고 생각하고. 구석구석 걸으면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곳들이 너무 많다. 맛있었던 식당은 두 번 세 번씩도 방문한다. 어쩌면 다시 못 올 곳이니까. 김영하는 여행은 일상의 부재라고 하지만, 어찌보면 여행은 일상의 연속이다. 돌아갈 내 삶이 있지만 이 곳에 머무르는 동안은 이 또한 나의 일상이다.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이 금지된 시기라 여행의 순간들이 더욱 아련하고 그립다. 오늘은 그간 소홀히 했던 우리 집 근처, 동네의 숨은 맛집, 나만 아는 장소들을 탐색하러 나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