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6
김정구
빛의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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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제1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했던 은희경의 '새의 선물'을 읽었을 때의 신선한 충격이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어렴풋하게 남아 있다. 귀여움과 당돌함, 시니컬함을 모두 갖춘 한 소녀의 이야기는 체제와 규칙과 법칙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당시 시대 상황에 비춰볼 때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소설 '빛의 과거'는 작가 은희경의 대학입학시절인 1977년(77학번)의 기숙사 생활을, 예절과 순결과 복종을 미덕으로 삼는 전북 고창 출신의 주인공 김유정이 숙명여대 기숙사에 입소하면서 전국에서 모인 여학생들과 살게 된 대학 새내기 1학년의 좌충우돌 이야기이다.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은 '다름'에 대한 이야기, '섞임'과 '다름'을 인정하는 이야기라고 했는데 책을 읽는 내내 정치적, 경제적으로 아직 후진국이었던 1977년을 포함한 1970년대 후반의 야만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미팅을 나갔으면 양손 가득 남자가 사주는 과자 봉지를 들고 와서 기숙사 문을 발로 차고 들어와야 된다는 충고를 하던 시대, 농촌 봉사활도을 나갔다 오히려 농사일을 망치는 바람에 농부들로부터 제발 아이들 공부나 도와주라는 핀잔을 받았던 시대, 학생운동하던 남학생을 기숙사 방에 하룻밤만 재워도 퇴학을 당하던 시대,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 대한민국의 이야기인데 선사 시대적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은 그 40여년 동안 대한민국이 정치적, 경제적 후진국에서 OECD 회원국으로 발돋움하기까지 엄청난 변혁의 시대를 겪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그렇다고 지금 우리가 사는 오늘이 1970년대 겪었던 '야만성'을 벗어났는지 하는 의문도 같이 들었다. 호남형 외모에 누구라도 부러워할 학력까지 갖추고 대통령의 남자라 온갖 권력의 중심에 섰던 한 남자는 결국 법무부장관에까지 오르면서 그동안 숨겨져 왔던 특권과 비리가 밝혀졌고, 한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며 여성의 독립성을 외치던 한 여성 작가는 이성을 잃은 독설로 자기 진영을 감싸기 바쁘고... 과연 시대는, 이념은, 정치는 발전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